서포 김만중 선생이 유배생활 끝에 생을 마감했던 경남 남해의 외딴섬 노도. 앵강만(灣) 초입에 있는 경상남도 남해군 상주면 양아리 벽련마을 포구에서 작은 배를 통해 들어 갈수 있습니다. 벽련포구에서 노도까지의 거리는 2㎞로 보통 때는 10분이면 오갈 수 있지만, 요즘처럼 봄바람이 불 때는 거리가 몇 배는 더 돼 보입니다.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구운몽' '사씨남정기'의 작가인 서포 김만중이 유배지로 떠나던 날의 심경이 이처럼 요동쳤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노도(櫓島)'라는 안내판이 보이는 선착장 일대는 온통 서포의 체취로 가득한 느낌입니다. 40여 년간 서포를 연구해 온 전직 국문학과 교수가 잠시 머물었던 빈집이 보이고 서포 김만중 선생의 유허비도 보입니다.

12가구 16명이 전부인 이 섬은 선착장에서부터 오르막길입니다. 이 작은 섬에서 옛날에는 배의 노를 많이 생산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노도(櫓島)라 불렀고, 멀리서 보면 삿갓이 바다에 떠 있는 것 같다 해서 삿갓섬이라고도 불렀습니다.

이곳은 북쪽 선착장 주변에만 사람들이 살고 있어 겨울에는 유난히 춥고 여름에는 더운 편입니다. 대부분 어업에 종사하면서 좁은 섬의 땅에 농사를 짓기도 합니다. 노도마을 사람들은 워낙 물이 귀하고 쌀이 귀해서 밥 한 톨, 물 한모금도 귀하게 여깁니다.

남해 상주 양하초등학교 노도분교(1995년 폐교) 마당에는 동백나무 치수가 햇살을 받아 곱게 자라고 있습니다. 동백나무가 유난히 많은 섬입니다. 또 바다를 향한 플라타너스 사이로 보는 벽련마을이 정감어립니다.

폐교를 지나다 보면 1692년(숙종 18년) 56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한 서포가 유배생활 중 직접 팠다고 전해지는 우물과 초옥, 시신을 잠시 묻었던 허묘(墟墓)가 있습니다.

초옥과 허묘로 가는 갈림길에서 어느 길로 들어설까 잠시 망설였습니다. 혼탁한 세상을 문학으로 표현했던 선생은 인생의 갈림길에서 얼마나 고뇌 했을까요.

서포의 허묘로 방향을 잡고 꽤 가파른 돌계단을 올라서면, 섬 아래를 훤히 내려다 볼 수 있는 묘지에서 서포가 남긴 문학 혼을 되새기니 머리가 저절로 숙여집니다.

돌계단길을 내려와 다시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10분 정도 걸어가면 서포가 3년간 머물던 초옥의 안내판이 나타납니다. 안내판에도 외로움이 비춰집니다. 왼편으론 우물터 흔적이 남아 있고 동백나무가 초병처럼 둘러싼 초옥에는 문학의 정기가 강하게 서려있습니다.

바다가 한 눈에 보이는 유배의 집은 쓸쓸함이 감돕니다. 산천초목 우거진 이곳에서 서포는 한을 달래며 명작을 남기는데 혼신을 다했을 것입니다.

초옥 앞 비탈에는 붉은 동백꽃을 수 백년 간 피우고 있는 동백나무가 나그네를 반기고 있습니다.

서포 김만중 선생을 비롯한 수많은 인사들이 유배됐던 남해에서는 전국에서 처음으로 유배문학관이 지난해 11월 문을 열었다 합니다.

이곳 문학관에는 서포를 비롯해 조선 후기 문신이었던 후송 유의양, 조선 전기 4대 서예가 자암 김구, 약천 남구만 등 여러 문장가의 작품이 전시돼 있습니다. 더불어 남해의 아름다운 섬을 형상화한 조형물과 보물섬의 비경을 담은 사진, 마제석기를 비롯한 남해의 유물, 목판인쇄 체험장, 삶과 죽음의 기로에 선 유배객의 모습을 만날 수 있습니다.

노도를 품은 남해는 '문학의 섬'으로 주목 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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